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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면재(정치80) 대진대학교 제8대 총장 인터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1.23
이면재(정치80) 대진대학교 제8대 총장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

 

법무법인 다온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다 20166월 제8대 대진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이면재 동문을 1120일 대진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났다.

 

-20166월에 제8대 대진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셨는데, 그 계기는?

10·2612·12 사태가 발생했던 1979년에 재수를 해 8032일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했다. 그러나 805월부터 11월까지 학교가 휴교를 하면서 학교를 다닐 일은 별로 없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휴교가 풀린 후 학생운동 서클에 가입하여 의식화 교육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는 바로 입대했고, 또 제대하자마자는 인천의 낚시대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 거기서 87년 즈음 파업준비를 하다 결국 쫓겨났고(웃음). 그 뒤로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합에서 일하다가 198910월에 결국 검거돼 914월달에 만기출소를 하였다. 그 시기는 노동운동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던 때였기에 나도 나의 길을 가야겠다 싶어서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2년만에 사법연수원 26기로 들어갔다. 연수원을 마치고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자 검찰을 지원했으나, 국가보안법 전과로 인해 변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살아왔기에 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그 때문에 20년간 고문 변호사였던 나를 믿음직스럽게 여긴 대진대학교의 총장직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총장으로서 갖고 계신 신념은?

앞서 말했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치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는 정계에 출마할 생각도 했었으나, 어느 한 당에 속해서 그 입장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어려움인 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학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왔다. 특히 총장은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이니 말이다.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이건 기성세대들이 잘못 가르친 것이라고 본다. 자기 몸 하나는 스스로 건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국력이 가장 강하고,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때에 살면서 가장 타율적이다. 나는 총장으로서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아는 학생들을 키우고 싶다. 그리고 20대 초반이면 세상이 너무 재밌어서 뛰어다녀야 할 나인데, 요즘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게 뚜렷하지 않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총장직 수락 후, 행사를 많이 만들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진대학교에는 DUCC(Daejin University China Campus)라는 사업이 있다. 중국에 우리학교와 결연을 맺은 4개의 캠퍼스가 있다. 그래서 대진대 학생이면 성적에 관계없이 한 학기에서 두 학기는 등록금 외의 별도 부담 없이 반년에서 1년 정도 중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다. 아무리 중국이 발전했다고 해도 캠퍼스에서 중국학생들은 6명이 한 방에 산다. 물론 우리 학생들은 가면 1,2인실을 쓰지만 다른 친구들이 사는 것을 보고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살았는지 깨닫는다. 현재 중국에는 해마다 350-400명씩 11년째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제목 하에 중국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본,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변호사로서의 경험이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

변호사는 대립되는 이해관계 중 한 편의 이익을 대변하는 직업이다. 변호사의 가장 큰 자질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다. 유능한 변호사는 싸움 잘하는 변호사가 아니고, 잘 경청한 후 판사님이나 검사님을 상대로 내가 법적으로 설명을 잘 하는 변호사이다. 대학교의 경우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각자가 복잡다단하게 목소리를 내기에 총장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잘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변호사로서 20년을 경청하고 정리하는 것에 써왔지만, 학교는 말들이 많고 길기 때문에 보다 어렵다. 그렇지만 이해관계 자체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데에 있어서는 변호사로서의 경험이 꽤 도움이 된다.

 

-정치외교학부가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1983년에 독도로 졸업여행을 갔었다. 정치학과 학생들은 70년대 초반부터 독도로 졸업여행을 갔었는데, 그게 70년대 중반에 끊겼다가 80학번 때 와서 다시 시작됐다. 당시에는 독도를 가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군함을 빌려야했다. 하지만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생들이 간다고 하면 군함을 빌릴 수 없었기에, 국회의원 하는 선배에게 연락해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독도 시찰간다는 명목으로 갔었다. 이렇게 정치학과 학생들은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려고 한다. 의미 있는 한 방들을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현재 서울대생들의 경쟁상대는 연세대나 고려대가 아니다. 북경대, 칭화대, 동경대가 경쟁상대이다. 나는 앞으로 20년 내에 통일이든 다른 방식으로든, 남북한이 협력하는 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을 북경대, 청화대, 동경대 출신들이 가만 놔둘리도 없고, 그 후에도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대비할 수 있는 건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유일하다.   

 

여현정 기자 thehonored15@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