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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혁백(정치71)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7.10
          

북미정상회담, 한반도 탈냉전 시대를 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71 정치학과)

 

1806년 예나전투에서 프러시아군을 격파한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예나에 입성하자, 이를 지켜 본 헤겔은 마상에서 세계정신(Weltgeist)이 지나가고 있다라고 찬미하였다. 피히테와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침략자, 독재자로 비판한 것과는 달리, 헤겔은 독재자 나폴레옹이 역설적으로 역사적 필연으로 다가올 최고도의 자유이념의 구현을 앞당기는 역사의 도구이자 이성의 간지’ (cunning of reason)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한반도의 냉전체제 해체를 착수한 사건으로 기록될 6.12 북미정상회담의 두 주역은 예측불가능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고위험성 지도자로 알려져 왔다. 트럼프대통령은 자기과시적이고, 이념보다는 이익을 계산하는 상인이며, 미국제일주의, 포퓰리즘, 고립주의, 보호주의를 신봉하는 21세기의 잭슨(Jackson)주의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조부와 부친과는 달리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서구문명의 세례를 받은 색다른 수령이고, 선대의 선군정치로선을 핵.경제 병진로선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집중로선으로 과감히 바꿀 정도로 탈이념적인 실용주의적 지도자이다. 그러나 2016년 년초부터 연거푸 핵 실험을 하고 미 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 ICBM발사 시험하면서 비합리적이고 무모하고 자폭적인 미치광이 지도자로 각인되었다.

 

612일 운명의 여신은 이 두 비주류 지도자들에게 70년간 지속되어온 한반도 전쟁상태의 종결과 평화의 회복이라는 시대정신의 실현을 맡겼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평화주의와 거리가 먼 지도자이지만 이성의 간지는 이 두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는 합의에 이를 수 있게 했다. 합리적 선택이론에 의하면,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였는데,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로 한반도 평화의 문이 열린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합리적인 지도자라는 통념을 깨뜨렸다. 201111월 트럼피즘(Trumpism) 현상으로 당선된 이래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탈냉전시대의 전형적인 합리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일관되게 미국제일주의에 입각한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이다. 그는 자유무역주의의 규범과 행태를 미국에 유리하게 바로 잡으려했고, 해외에 나간 역외 미국자본 (offshoring)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려 하였을 뿐 아니라 (reshoring), 외국자본도 미국에 더 투자하도록 강요하였다. 대동아시아 전략도 동맹과 이념을 우선하는 냉전시대 외교전략에서 탈피하여 미국의 국익과 동맹유지 비용을 계산하는 이익중심의 탈냉전 외교전략으로 이동하였다. 동맹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대미무역적자를 축소하라고 압력을 가했고,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미군의 주둔비용을 대부분 부담하게 하는 역외균형’ (offshore balancing) 정책을 구사하였고, 중국에 대해서는 북한문제를 미국 대신 중국이 해결하라는 '외주' (outsourcing) 전략을 강요하였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상호 핵무기공격 위협으로 촉발됐던 한반도 핵전쟁 위기의 시간이 지나가고 2018년 정초부터 대화와 평화의 언술이 다시 등장하였다.

한반도 전쟁위기설의 전말을 보면서 김정은은 물론 트럼프도 전쟁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평화를 지상명제로 여기는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냉혹하게 이익을 계산하는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빈다고 하면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암시하였고 문재인정부가 이에 화답함으로써 평창에서 남북간의 대화가 진행되었고 3월 초에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어 4273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2017년 말에서 612일 북미정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 역사적 사건이 김정은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김정은은 2017년 핵 개발이 완성되자 방어적인 핵 태세로 전환하였고, 2018년 신년사에서부터 평화공세 (peace offensive)를 시작하였다. 평창올림픽에서는 대화공세를 통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실현의 기초를 쌓았고,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경제 건설 병진로선에서 경제건설 총력 집중로선으로 당의 기본 로선을 바꾸었다.

 

2011년 김정은 집권 후 북한 경제는 연평균 3~4% 성장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성공에 힘입어 북한은 핵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핵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김정은의 병진로선은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핵무력의 보유가 강력한 경제제재를 불러와 경제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경제성장의 단맛을 본 북한 주민들은 제재의 고통을 감수하며 다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려 하지 않을 태세였다. 여기에 더하여 성공의 역설이 일어났다. 사실상의 시장경제를 허용하는 김정은의 경제개혁이 대외의존도를 2015년의 경우 47%로 높여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북한 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효과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로선에서 경제건설집중로선으로 전환을 선언하고 평화공세를 통해 체제안전보장과 제재완화와 교환하여 비핵화를 단행 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과 한국의 지도자에게 설득하고, 억류 미국인 석방과 핵실험 시설 폭파를 선제적으로 단행함으로써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려하였다. ‘협상의 달인이라고 자부하는 트럼프의 협상기술을 역으로 이용하여 선제적으로 깜짝쇼를 통해 트럼프의 마음을 얻은 김정은은 영리한 독재자였다.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속았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평가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화려한 수사학으로 김정은을 칭찬하고 427일 남북정상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로 비핵화를 정의하는데 합의해 주었다. 70년 적대관계 끝에 처음 만난 두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6.25전쟁 전사자 유해송환4개항에 합의했다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명한 바와같이, 6.12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기 시작하였다.